정략 개헌보다 정치개혁이 먼저다[시평]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
이호선 국민대 법과대 학장
2026-2028년 쪼개기 개헌론 여당의 장기집권 꼼수 가능성 타락한 팬덤정치 시정 더 시급
정치 기득권 해체가 시대 과제 여의도 정치 바꿀 혁신안 내고 AI 시대 기본권 재정립 나설 때 더불어민주당이 내년 6·3 지방선거에 맞춰 △대통령 4년 연임제 △대선 결선투표제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담은 1차 개헌을 추진하고, 2028년 총선에서는 국민 기본권을 강화하는 2차 개헌을 하겠다는 이른바 ‘단계적 개헌’ 구상을 내놨다.
겉으로는 여야 합의를 전제로 한 현실적 접근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제 그 속내를 들여다보면 권력구조 재편을 앞세우고 국민의 기본권 강화를 뒷전으로 미루는 정치적 속셈이 훤히 드러난다.
우선, 국무총리 국회 추천제를 고리로 야당 내 내각제 개헌론자들을 끌어들이고, 대선 결선투표제를 통해서는 제3당에 당근을 줘서 개헌에 동참시키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보다 더 기막힌 꼼수는, 이재명 대통령에게 연임제 제한의 족쇄를 풀어주겠다는 발상이다. 현행 헌법 제128조 제2항은 대통령의 임기 연장 또는 중임 변경을 위한 개헌은 그 당시 대통령에게 효력이 없다고 못 박고 있다. 이는 권력자가 자신의 정치적 이해를 위해 헌법을 고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그런데 민주당의 구상은 1차 개헌에서 이 조항을 사실상 사문화시킨 뒤, 2차 개헌에서 국민 기본권 확대라는 명분을 덧씌워 권력 연장의 길을 열려고 한다. 도박판에서 몰래 패를 바꾸는 손장난과 다를 바 없는 속임수다.
국민이 요구하는 시급한 개헌 과제는 따로 있다. 인공지능(AI)과 디지털 기술이 생활 전반을 지배하는 지금과 같은 현실에서 개인데이터주권을 기본권 차원에서 보장하고, 국회의 입법행위를 전 국민투표로 폐지할 수 있는 장치를 마련하는 등으로 팬덤 정치로 타락한 대의정치를 국민이 직접 통제하는 실질적 참정권의 확대가 그것이다. 이는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강화하고 민주적 정당성을 회복하는 개헌 과제로서 제대로 사고가 박힌 정치 집단이라면 여야가 크게 다툴 이유도 없다. 국민 다수가 공감하고 직접 체감할 수 있는 변화다.
사실 개헌은, 대한민국 현대 정치사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주제다. 1987년 6월 항쟁의 산물로 현행 헌법이 제정된 이후, 정치권은 대통령직선제의 틀을 유지하면서도 여러 차례 권력구조 개편 논의를 반복해 왔다. 그러나 국민이 진정으로 바란 것은, 권력 나눠먹기가 아니라 권리의 확대였다. 개헌은 누구를 위해 무엇을 하는지가 분명해야 한다. 국민을 위한 개헌이 아니라, 정치 기득권을 위한 개헌이라면 그것은 국가와 민주주의에 해만 끼칠 뿐이다.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 국가들은 권력구조보다 국민의 권리 보장을 우선했고, 그 결과 민주주의의 안정적 토대를 구축할 수 있었다. 반면, 권력구조에만 집착한 국가는 정치적 불안과 국민 불신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민주당의 이른바 ‘개헌 로드맵’은 결국 현 정권이 권력 연장을 위해 개헌을 이리저리 쪼개는 장난질에 불과하다. 민주당은 헌법과 국회법의 정신을 무너뜨리며 회기 쪼개기 꼼수를 일삼아 오더니 이제는 개헌으로까지 옮아갔다. 그 노골적인 헌법 조롱의 이면에는, ‘사탕’ 몇 개 던져주면 넘어올 야당 측 의원들이 있을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국회의원들은 우습게 봐도 국민을 우습게 보면 안 된다.
지금 많은 국민이 여의도 정치를 보면서 울분을 토한다. 무엇을 하며, 이 나라에 기여하기에, 그 자리에 300명이나 있는가. 정말 필요한 존재들인가. 국회의원의 특권을 제한하고 정치 기득권을 해체하는 개헌이야말로 시대적 요구다. 국회의원 소환제, 4선 연임 금지, 총 임기 제한 같은 제도는 국민이 직접 체감할 개헌 과제다. 이런 개헌이야말로 민주주의를 바로 세우고, 시대적 위기를 넘어설 수 있는 길이다.
오늘 우리나라 민주주의는 권력 집중, 정치 불신, 사회 양극화, 계층적 세습이라는 국가적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개헌이 그들만의 리그가 돼선 안 된다. 민주당이 꼼수로 헌법과 국민을 속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면 국회 개혁 관련 개헌안부터 제시해야 한다.
제1야당인 국민의힘도 마찬가지다. 지금처럼 있으나 마나 하게, 무기력하게 끌려다니는 모습을 보이느니 차라리 스스로 국회의원의 모든 기득권을 내려놓는 개헌을 선언하는 게 훨씬 더 나라를 위하는 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