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기획특집
[그 사람을 찾습니다 #20] 그림으로 사람을 잇다, 디자이너 정민우

 

펜, 연필, 마카… 잡히는 대로 순식간에 선을 그려 나간다. 단정한 손이 지나간 자리에는 군더더기 없는 그림이 뚝딱 나타났다. 그림 솜씨를 보아하니 화가일까 싶은데, 어라? 조곤조곤 말도 잘한다. “어린아이는 몸에 비해 머리 크기가 조금 큰 편인데, 머리가 작아지고 몸이 커지니 조금 어른스러워졌죠? 괜찮아요. 이렇게 머리 크기를 조금만 키워주면… 어때요?” 유쾌하고 쉬운 설명에 절로 그림이 따라 그려진다. 보면 볼수록 정체가 궁금해지는 이 사람, 학교 재학 당시 온통의 기사를 보았다며 밝은 얼굴로 기자를 반겨주는 디자이너 정민우를 만나보았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자기소개 부탁드릴게요.

안녕하세요, 디자이너 겸 드로잉튜터 정민우입니다. 디자이너와 드로잉튜터, 익숙지 않은 단어라 제가 하는 일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지실지도 모르겠네요. 조금 더 설명 드리자면 저는 일러스트레이션 일을 하고 있고, 일반인을 대상으로 함께 드로잉 수업도 진행하고 있습니다. 때때로 기업이 내부적으로 실시하는 어도비 일러스트레이터 프로그램 교육에 강사로 나가기도 하였고, 얼마 전에는 마이크임팩트 TV (강연 및 교육 콘텐츠를 제공받을 수 있는 온라인 플랫폼)에서 그림 ‘왕초보’들을 위한 온라인 드로잉강좌를 오픈하기도 하였습니다.


인터넷 검색을 하다 Jmw 스튜디오를 알게 되어 취재를 요청 드렸어요. 어떤 곳인가요?

Jmw 스튜디오는 이름만 들었을 땐 거창한 작업실 같이 보이지만, 사실은 제가 편하게 일할 수 있는 개인적인 작업공간이에요. 조각을 하는 사람의 경우, 넓은 공간과 함께 용접 도구 같은 다양한 준비물들이 필요하지만, 저는 디자인 작업을 하기 때문에 펜 몇 가지와 컴퓨터만 있으면 되거든요. 주로 혼자 일하는 편이라 별도의 큰 공간이 필요하지는 않습니다.

 


대학에서 입체미술을 전공했는데, 어떤 계기로 디자인 일을 하게 되었나요?

대학교에 들어갈 당시에 순수미술에 큰 매력을 느꼈어요. 학교에 들어와 전시를 해보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나보니 대중들하고의 갭이 알게 모르게 많이 느껴지더라고요. 아무래도 화이트큐브 안에서만 사람들을 만나게 되니까 전시회를 오지 않는 사람들과는 소통할 방법이 없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어요. 그러던 차에 디자인 수업을 듣게 되었는데 흥미를 많이 느꼈습니다. 디자인이라는 게 지금을 살고 있는 세상과 사람에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어 외부와의 교류가 많은 부분이 흥미로웠거든요. 그리고 순수미술은 혼자 주로 시간을 보내는 반면, 디자인은 여러 사람들과 어울려 의견을 맞추고, 하나로 조율해가는 과정이 제 성격과 좀 더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어요. 그 뒤부터는 미술학부 수업과 조형대학 수업을 같이 수강하면서 학창시절을 보냈어요. 그러던 중 2학년 2학기에 외부로부터 디자인 프로모션 일을 하나 받게 되었고,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시각디자인과 형들과 함께 작업을 시작하면서 디자인 작업에 발을 들이게 되었습니다.


타과 수업을 많이 들었다 하셨는데, 어떤 학생이었는지 궁금해지는데요?

군대 제대하고 2학년 1학기에는 흔히 말하는 복학생 버프를 받아서 정말 열심히 수업에 임했어요. 밥 먹고 돌 깎고, 밥 먹고 나무 깎고. (웃음) 결과적으로 성적이 좋게 나와서 장학금도 받고 뿌듯했어요. 그런데 방학을 하고 딱 3일이 지나니까 알 수 없는 허무함이 밀려왔어요. 점수에만 연연했던 지난 학기 생활이 답답하게 느껴지고, 앞으로 남은 학기를 이렇게 보낼 걸 생각하니 막막하더라고요. 그러다 타과 수업을 듣게 되며 디자인에 색다른 매력을 느끼고, 점수에 연연하기보다 내가 하고 싶고, 배우고 싶은 것을 하며 대학생활을 보내자고 마음먹게 되었죠. 호기심도 많고 이것저것 해보는 걸 좋아해서 그 때부턴 흥미를 느끼는 것은 대부분 해 봤던 것 같아요. 회화과,실내디자인,의상디자인,무용학과 등등 학과를 가리지 않고 관심이 가는 수업은 수강하였고, 광고학과 친구들이랑 공모전도 나가보기도 했어요. 특별히 시각디자인학과의 타이포그래피 수업은 타과생은 수강 불가라고 되어 있었는데, 교수님께 학점은 안 받아도 좋으니 수업만 듣게 해 달라고 요청해서 듣기도 했어요. 그리고 졸업한 선배들이 학교에 와서 강연하는 것도 자주 듣고 했었는데, 어느 분야든지 인정을 받으려면 근성과 끈기를 갖고 임해야 하는구나 하는 걸 느꼈던 것 같아요. 대학에 와서 학문적으로 배운 것도 많지만, 먼저 길을 걸어간 선배들의 얘기를 듣고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인생 공부가 되는 시간들이었어요.

 


본인을 소개하실 때 말씀하신 드로잉수업이 띄어요. 어떻게 만들게 되었나요?

지인 중에 고등학교 선생님이 있었어요. 수업 중에 설명을 위해 그림을 그릴 일이 종종 있는데, “소"를 그렸는데 학생들이 “개"를 그렸다고 창피를 당한다고 도움을 청한 일이 있었거든요. 보통 처음 미술학원에 등록해서 배우시는데, 학원에서는 입시미술에 치우쳐진 프로그램으로 운영을 하더라고요. 저 역시 입시를 준비하면서 일정한 패턴의 수업을 들었는데, 반복해서 선긋기만 하고, 정물화, 조각상만 그리면서 지루해지더라고요. 전공자가 아닌 일반인 분들에게는 그림을 배우는 게 다소 딱딱하고 어렵게 느껴지는데, 저는 일상에서 보고 느끼는 간편한 드로잉을 나누고 싶었어요. 그 분들이 필요한 것은 묘사가 아주 잘 된 그림이 아니라, 일상을 표현하거나 여행지에서 그림을 추억으로 남길 수 있는 라이트한 그림이더라고요. 드로잉클럽이라는 모임을 만들어, 편안하고 쉽게 그림을 그려보는 기회를 가졌고,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틀이 잡히게 되었어요.


그럼 개인적으로 해 오신 일중에 기억에 남는 작업도 한두 가지 소개해 주시겠어요?

아모레퍼시픽의 리리코스라는 브랜드에서 제의 받았던 디자인 작업이 기억에 남아요. 개인 홈페이지에 올려둔 작업 이미지를 보시고, 회사에서 새로 시작할 프로모션과 콘셉트가 맞는 것 같으니 함께하면 어떻겠냐며 연락을 주셨는데 처음엔 큰 규모의 기업에서 먼저 컨텍해 왔다는 게 신기했어요. 담당자분과 함께 커뮤니케이션 하며 한달간 작업을 하였고, 브랜드 페이스북 페이지에 제 작업물이 올라갔어요. 프로모션용 일러스트레이션 이었는데, 페이스북에서 사람들이 반응하고, 댓글이 달리는 게 놀랍더라고요. 그 때가 마침 졸업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라서 더 감회가 새로웠던 것 같아요. 작업이 완전히 끝나고 나서야 내가 어떤 기업과 같이 일을 했구나 라는 게 실감이 났어요.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이후에 클래식하시는 분들하고 아이덴티티 작업을 했던 것도 기억에 남네요.

 

 

 
작업 할 때 중점적으로 생각하는 부분이나 꼭 지키는 규칙 같은 게 있으신가요?

클라이언트와의 소통을 중시하려 합니다. 기획 의도는 무엇이고, 주어진 예산은 어디까지인지, 클라이언트가 원하는 부분을 많이 들으려고 해요. 디자이너는 타인이 표현하고자 하는 어떤 의도를 시각적으로 풀어서 표현해 주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늘 미팅에서 주고받는 얘기들을 서면으로 남겨두고, 어떻게 그들의 의도를 풀어낼 수 있을까 작업을 진행해요. 때로 좋은 아이디어가 있으면 먼저 제안을 드리기도 해요. 그리고 항상 이미지들을 같이 보고, 이야기해요. 디자인은 보이는 작업이라 말로만 커뮤니케이션하면 오해가 있을 수 있거든요. 예를 들면, 노란색을 떠올릴 때, 저는 “노르스름”한 노랑을 떠올릴 수 있지만, 클라이언트는 “레몬색같은 노랑”을 떠올릴 수도 있거든요. 시각적 오해를 줄이기 위해 이미지로 많이 이야기를 하는 편이에요.

 

진로에 대해 고민하는 후배들에게 한마디 해주세요.

다소 의아해 하실 수도 있는 말이겠지만, 최근에 ‘엄마 말을 안 듣길 참 잘했구나’라는 생각을 했어요. 얼마 전에 고향에 다녀왔는데 문득 고3 시절이 떠오르더라고요. 미술을 오랫동안 해왔고, 진로도 미대로 준비하고 있었는데 입시에 실패했어요. 부모님은 방향을 바꿔 인문계열에 지원해 은행원이 되거나 일반적인 회사에 들어가길 권유하셨어요. 그래서 어머니를 설득을 했어요. “엄마, 엄마가 원하는 대로 인문대에 진학해서 회사에 들어갔다고 생각을 해봤어요. 졸업하고, 회사 생활을 하며 서른 쯤 되었을 때, 과연 제가 행복할지는 자신이 없어요. 난 행복하지 않을 것 같은데 그런 내 모습을 보는 엄마는 행복할까요? 그런데 반대로 미술을 계속하다 그 나이쯤이 되어서, 10년 전에 부모님 뜻을 따르지 않은 건 속상하시겠지만, 30살의 제가 스스로 행복하다면, 그런 모습을 보는 엄마도 함께 행복하지 않을까요?”라고요. 엄마는 당시에 콧방귀를 끼셨지만, 그렇게 해서 한 번 더 미술을 이어갈 기회를 얻었고, 서울에 올라와 재수 생활을 보내고 소원하던 미대에 들어가게 되었어요.

주위의 사람들이 아무리 나를 생각한다 해도, 나를 제일 많이 생각하는 건 자기 자신일거에요. 나를 생각해주는 타인의 말을 적절히 받아들이는 것도 좋지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선택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의 선택하고, 그것을 이루어냈을 때의 성취감은, 타인의 추천에서 비롯된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이 크거든요. 혼란의 시기를 누구나 한번쯤 겪어야 하는 것이라면, 단순히 미룬다고 답이 되는 게 아니고, 누가 더 빨리 그 두려움과 불안을 정면으로 대응해서 자기를 발견하느냐가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끝으로, 궁극적인 꿈이 뭔가요?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을 제가 더 잘했으면 좋겠어요. 음, 사실 지금 제가 하고 싶은 일들을 하고 있어서 “궁극”적인 꿈이라는 게 없는 것 같아요. 현재에 안주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재 행복하거든요.  사실 "내일의 나"도 "오늘의 나"와는 다른 모습일텐데 이런 중에 먼 미래를 확신하며 그리는 건 어려운 일 같아요. 막연한 미래의 꿈보다는, 현재에 충실해서 6개월 뒤쯤에 한 뼘 더 성장해 있을 제 자신을 꿈꾸면서 현재에 더 집중하고 싶어요. 일을 하면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며 배우는 점이 많거든요. 그분들은 제게 어떠한 자극을 주시고, 그럼 저는 그 자극을 받고 계속해서 바뀌겠지요? 대학에서의 시간이 저를 바꿨던 것 처럼요.

 


마지막 질문에 답을 받아 적던 손이 절로 멈추었다. 꿈이 없음에도 충분히 꿈을 꾸듯 살아가는 모습에 놀라웠고 그 확고한 눈빛이 부러웠다. 그 흔들림 없는 답변에 일말의 미동을 주고자 한 번 더 ‘10년 뒤 자신의 모습이 어떨 것 같냐’는 질문을 내어놓았다. 잠시 골몰하던 그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말했다. “지금보다 좀 더 좋은 작업환경? 주위의 더 많은 사람들? 그거면 될 것 같은데요.(웃음)”

인터뷰를 마치고 일어서는 순간까지 특유의 여유와 확신이 묻어나왔다. 자신의 생각을 전하는 데 가감이 없으면서도 서두르지 않는 모습은, 그가 걸어온 길 역시도 에두르지 않되 차근차근 곧게 닦아왔음을 짐작케 했다. 더불어, 새로운 색으로 나날이 빛을 더해갈 그의 앞날이 주목되는 이유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