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저임금제 무엇이 문제인가 / 이호선(법학부) 교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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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이 소득의 유일하거나 주요한 원천인 사람들이 노동으로 최소한의 인간다운 삶을 보장받도록 해야 하는 것은 당연한 국가의 책무다. 이런 점에서 최저임금제도는 공동체의 통합, 구성원의 자존감과 정체성을 지켜주는 기능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이 제도는 사적 자치의 원칙과 시장경제에 대한 예외적 강제 개입이므로 입법 방식과 사법적 해석은 매우 신중해야 함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정부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심각한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이는 영세 중소상공인 등을 지원하기 위해 과거 5년간의 평균 인상률을 상회하는 비율에 상응하는 금액을 보조금으로 지급할 계획이라고 한다. 대략 추산한 금액이 3조원이다. 최저임금을 일률적으로 정하다 보니 생긴 부작용을 국민 세금으로 메우는 셈이다. 최저임금을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한다는 점에서 평등의 요구는 충족시키지만 과연 이러한 평등이 형평에도 부합하는 것인지, 나아가 최저임금 적용 대상인 근로자의 입장에서도 반드시 바람직한 것인지는 의문이다. 현행 최저임금법은 지난 1986년 제정돼 몇 번의 개정을 거쳐 지금에 이르렀는데 모델은 1959년 제정된 일본의 최저임금법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최저임금법의 취지를 살리면서도 매우 정교한 입법으로 혹시라도 생길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일본의 경우 최저임금을 전국 단위가 아니라 원칙적으로 우리로 치면 광역자치단체 차원에서 정하도록 하고 있다. 각 지역의 물가, 경제 사정, 고용 효과의 특수성을 임금에 반영하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또 노동 강도를 감안해 가벼운 업무나 시행령에서 정하는 자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을 감액해 지급할 수 있는 여지를 두고 있다. 그리고 일정한 사업이나 직업에 따라서는 소관 부처의 장관이나 지자체에서 특정 최저임금을 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 근로자에게 제공하는 식사와 같이 화폐 외의 현물 지급도 급여의 일종으로 봐 적정하게 평가해 포함함으로써 사용자의 입장도 배려하고 있다. 우리 최저임금법에는 이러한 규정들이 없거나 사문화돼 있는 까닭에 단순 노무에 종사하는 외국인 근로자들까지도 업종과 업무 강도를 불문하고 국민 세금으로 급여를 보조해주지 않으면 안 되는 황당한 상황까지 예견되는 것이다. 이런 경직성은 최저임금 결정에서 사업자의 임금 지불 능력을 고려 대상으로 넣고 있지 않은 데서도 단적으로 드러난다. 우리 법은 ‘최저임금은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 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정한다’고 하고 있는데 이는 ‘지역별 최저임금은 그 지역에서의 노동자의 생계비 내지 통상적인 사업주의 임금 지불 능력을 고려해 결정되어야 한다’고 한 일본의 최저임금법 조항과 대비된다. 계약자유의 원칙에 대한 중대한 예외를 정하면서 그 계약의 일방 당사자를 고려하도록 명시하지 않는 입법 태도는 납득할 수 없다. 우리 법은 일본에 비해 형사처벌 대상도 훨씬 광범하고 강도도 매우 엄하다. 이런 법 체계가 근로자들에게 유리한 것만은 아니다. 사람에 따라서는 낮은 임금에 대한 불만 해소보다 지속되지 않는 고용불안의 해소가 더 시급할 수 있다. 돈은 좀 적게 받더라도 고용의 계속성을 보장받거나 해당 직업에 필요한 숙련된 기술과 경험을 더 원할 수도 있는 것이다. 다시 말해 임금(賃金)과 임기(任期)의 교환을 원하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데 현행법은 모든 것을 가로막고 일체 허용하지 않고 있다. 그만큼 입법의 선의가 횡포로 기능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법이 디폴트 규정의 성격을 갖도록 해야 한다. 당사자들 사이에서 달리 정한 바가 없을 때만 최저임금법을 하나의 기준으로 삼되 만일 사용자가 이를 악용할 경우에는 국가가 사후적으로 개입해 시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식을 취하자는 것이다. 이는 급격한 최저임금 인상으로 고용이 더 줄어들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을 해소하는 유력한 방편이기도 하다. 정부 당국과 입법부의 진지한 성찰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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