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충무로에서]지식인의 죽음 / 김도현(경영학부) 교수

교수라는 직업을 밝히기가 부끄러운 시절입니다. 어깨를 으쓱거리던 교수 출신 공직자들이 매일 같이 수의차림으로 뉴스에 등장하고, 청문회에 등장한 교수들은 변명과 거짓말을 늘어놓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 교수를 비롯한 지식인의 몰락은 갑작스러운 일이 아닙니다. 4대강의 효과를 둘러싼 논의에서 일부 학자들이 과학적 근거에 천착하는 대신 정치적 유·불리를 선택한 것은, 그래서 이권과 자리를 나누어 받은 것은 지식인의 몰락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아주 처참한 장면이었지요. 그렇습니다.
 
우리 사회가 지식인들을 더 이상 존중하지 않게 된 것은 대개 지식인 스스로의 탓입니다. 그러나 지식인의 목소리가 사라진 사회가 꼭 좋은 것은 아닙니다. 지난해 역사 관련 학회장에 일부 단체가 난입해 학회를 방해하고, 몇몇 교수들을 위협한 적이 있습니다. 학문적 자유와 토론이 억압되면 사유는 퇴보합니다. 그리고 이성과 사유의 진공지대에는 흔히 파시즘과 선동이 파고든다는 것이 역사의 교훈입니다. 우리 사회에도 조짐이 보입니다. 종교적 이유로 진화론 교육을 터부시하는 학교가 생겨나고 있는가 하면, 의사를 사기꾼 취급하면서 백신을 맞지 말자는 주장이 널리 퍼져나가기도 합니다.

지식인의 몰락은 우리나라만의 문제는 아닙니다. 트럼프의 당선이나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 탈퇴)와 같은 사건들은 지식인들의 무력함을 잘 보여주는 일이었습니다. 이런 우울한 시대를 상징하듯, 새해 첫날 영국의 한 학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앤서니 앳킨슨. 캠브리지대학과 런던정경대의 교수를 역임했지만, 그 흔한 박사학위도 없었습니다. 1944년 생인 그는 스무 살 무렵 병원에서 자원봉사를 하면서 가난한 환자들의 삶과 마주칩니다. 캠브리지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하던 청년 앳킨슨은 나머지 삶을 온전히 빈곤과 불평등의 원인을 탐구하는 데 바치게 됩니다. 학자로서 그의 성취는 놀랍습니다. 40여 편의 저서와 400여 편의 논문을 썼습니다. 불평등측정지수인 앳킨슨지수를 만들어냈고, 영국의 상속세 자료를 기반으로 빈곤과 불평등의 변화를 실증분석하는 선구적인 연구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국제적 소득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 피케티 연구의 기반을 만든 것도 바로 앳킨슨 입니다. 노벨 경제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자주 거론된 이유입니다. 

그는 연구에 근거하지 않고 섣불리 말하는 사람이 아니었지만, 필요하다면 언제든 용기 있게 발언했습니다. 연구결과를 통해 분배지향적 정책의 필요성을 믿게 되자 어디든 달려갔습니다. 한 목격담에 따르면 그는 심지어 사람들이 많이 지나다니는 시장 길목에 서서 사람들이 정부로부터 받을 수 있는 빈민구제프로그램을 홍보한다거나, 정부를 향한 주장을 외친적도 있다고 합니다. 점잖은 교수체면에도 말이지요. 

그는 말년에 골수종을 앓았습니다. 그러나 70대의 암환자이면서도 마지막까지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가 최근 매달린 주제는 놀랍게도 인공지능과 노동문제였습니다. 인공지능이 가져올 실업, 그리고 그것이 야기할지 모르는 불평등의 심화는 그를 염려하게 했고, 마지막 순간까지 대안을 모색하는 연구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는 나이가 들수록 더 열정적이 되었고, 다양한 분야의 젊은 학자들과 어울렸으며, 모든 국민에게 국가가 기본상속금을 주자는 혁신적인 대안을 제시하기도 했습니다.
 
일종의 상징처럼, 2017년 1월1일의 뉴스에는 수의를 입은 학자들의 모습과 앳킨슨의 부고가 함께 등장했습니다. 둘 다 지식인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지만, 하나의 소식이 환멸을 불러 일으켰다면, 다른 하나의 소식은 공부하는 이들의 자세를 새삼 일깨우는 것이었습니다. 삼가 앳킨슨의 명복을 빕니다. 

 
김도현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

 

원문보기: http://view.asiae.co.kr/news/view.htm?idxno=2017010607150623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