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론속의 국민
“대학 특성화없인 구조조정 못피해” | |||
---|---|---|---|
5일 이임식 중수부장 출신 정성진 前 국민대총장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m 대학총장직은 요즘 학생들에게 얼마만한 무게로 받아들여질까. 지난 5일 이임식을 가진 정성진(65) 전 국민대 총장은 대검중수부장을 지낸 법조인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다. 그는 ‘검찰 간부 출신 대학 총장’이라는 특이한 이력이 주는 위화감에도 불구하고 재임중 말많고 탈많은 사립대 행정을 탁월하게 이끌어 학생들로부터 존경과 신뢰를 한몸에 받았다. ‘리더십 붕괴’가 우려되는 시기에 그 비범한 리더십의 비결을 알아보고 국가적 난제인 교육문제와 대선자금 수사 등에 관한 지혜를 얻고자 인터뷰를 요청했다. 정 전총장은 처음엔 물러나는 사람이 여러 말을 하는 건 부끄러운 일이라며 고사했다. 그러나 교육계와 검찰에서 중책을 맡았던 사람으로서 책임을 강조하며 거듭 ‘압력’을 가하자 지난 5일 이임식 직전 시간을 내 사회적 현안들에 대해 특유의 소탈한 태도로 견해를 밝혔다. ―4년 임기를 마치고 평교수로 돌아가는 감회는? 주변에선 연임을 희망했다는데. “감회라기보다 반성을 하고 있다. 공적인 임무를 수행한답시고 교직원과 학생들에게 인간적 배려를 하지 못한 적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자만하지 않았는지, 분수를 넘지는 않았는지 하는 걱정도 있다. 물론 갈등구조가 많은 대학에 화합의 분위기를 정착시켰다는 보람이 크다. 교직원과 학생들이 신뢰하고 따라줘 고맙게 생각한다. 연임 욕심을 내지 않은 건 젊고 국제감각이 있고 사이버 지식이 풍부한 사람에게 물려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청년실업문제가 심각하다. 기업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대학교육에 문제가 있다는 지적이 많다. “어느 경제단체의 연구결과를 보니까 대졸 신입사원에 대한 기업들의 만족도가 평균 26점밖에 안되더라. 기업들은 대졸 신입사원을 현장에서 재교육해야 한다며 볼멘소리를 한다. 하지만 대학은 취업센터가 아니므로 세계관 배양, 인성 교육에 신경 쓸 수밖에 없다. 다만 기업 수요와의 간극을 좁힐 수 있도록 전문적·실용적인 교육을 보다 강화할 필요가 있다.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대학 서열의 문제도 신경쓰지 않을 수 없다.” ―대학 서열화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솔로몬의 지혜’는 없는가. “수십년간 고착돼온 서열화가 단시일내에 깨지긴 어려울 것이다. 더구나 대학이 많아서 신입생 경쟁은 갈수록 치열해지고 있다. 대학의 구조조정은 이제 피할 수 없다. 이럴 때 대학의 입장에서는 특성화로 가야 한다. 어느 대학이 어느 분야가 강하다는 인식을 줘야 한다. 국민대의 경우 조형예술, 법학, 디지털정보학에서 앞서간다고 자부한다. 대학원도 비즈니스IT, 테크노디자인 등 특성화를 지향하고 있다.” ―대학서열화는 입시제도의 문제와도 무관치 않다. “입시는 복잡한 문제라 자신있게 말하기 어렵다. 고교 교육이 대입에만 매달려 파행으로 치닫지 않도록 교육당국이 이끌어야 한다. 대학 입장에선 나름의 입시 전형을 개발할 필요가 있다. 국민대 조형대학의 경우 ‘발상과 표현’을 시험 아이템으로 정해 지원학생의 창의성을 평가하고 있다. 초기엔 미술학원과 학부모의 집단 반발 때문에 무산될 뻔했으나 꾸준히 실시하자 지금은 다른 대학에서도 따라오고 있다.” ―일부 사학재단이 대학행정에 일일이 간섭해 갈등을 빚는 경우도 있다고 들었다. “학교는 기업의 경영정신을 본받아야 하지만, 학교는 교육기관으로서 특성이 있기 때문에 재단은 학교당국에 자율성을 보장해줘야 한다. 우리 재단은 적어도 내 임기중엔 모든 것을 일임했다. 앞으로도 그렇게 하기 바란다.” ―이제 전공분야를 물어보겠다. 불법 대선자금 수사가 막바지에 접어들고 있는데 정치권의 형평성 논란과 기업인 처벌수위가 양대 난제로 부각되고 있는 것같다. 검찰후배들에게 조언하고 싶은 말이 있는가. “노무현 대통령이 취임 후 검찰권 행사를 직접적으로 용훼(容喙·참견을 함)한 흔적은 없는 것같다. 검찰권의 독립이란 점에서 과거보다 진일보한 것이 사실이다. 검찰이 이번 수사를 통해 국민의 신뢰를 상당부분 회복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러나 수사 기술적인 문제와 함께 선거를 앞두고 있다는 시점의 문제 때문에 정치적 파장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적당한 시기에 지혜롭게 정리하는 게 바람직하다. 지금이 그 시기다. 사리와 법정신에 맞는다면 국민들도 납득할 것이다. 수사가 끝없이 계속되면 국민전체가 ‘피로현상’을 느끼게 되고 이는 경제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러면 본래의 법정신을 구현하지 못하게 된다. 기업인 처리문제는 더이상 좌고우면할 일이 아니다. 일각에선 최고 권력자와의 교감에 대한 의혹의 시선도 있기 때문에 검찰이 소신있게 결단을 내려야 한다. 물론 기업인들의 처리과정에선 국가적 신인도와 국민적 신뢰문제 등도 고려돼야겠지만 기업인들도 아예 처벌을 면하려고 시뮬레이션(운동경기에서 거짓으로 넘어지는 행동)을 심하게 취하면 안 된다.” ―전관예우가 사법개혁의 걸림돌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고위 법관과 검찰간부 출신 변호사들의 사건수임을 제한해야 한다는 주장도 있던데. “전관예우야말로 국민이 법조계 전체를 불신하게 하는 큰 요인이다. 그러나 제도적으로 변호사 수임을 제한하는 건 위헌소지가 있다. 전관 스스로 예민한 사건 수임을 자제하면서 법조계 내부의 바람직한 관행을 쌓아나가는 게 후배 법조인들을 도와주는 일이다.” ―여러차례 장관이나 특별검사 등의 하마평에 올랐는데 공직 진퇴에 관한 특별한 소신이 있는가. “이젠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 어떤 방식으로 살아야 할까가 관심사다. 이젠 공직의 굴레를 벗고 담담하게 살고 싶다. 공직은 연부역강(年富力强)한 후배들이 맡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지난 연말 주변 사람들에게 돌린 연하장에서 밝힌 대로 평교수로 돌아가 1년간 강의하다가 정년퇴임하면 변호사 사무실을 열어 사회에 대한 법률 봉사를 할 생각이다. 최근 취임한 한국법학원 원장으로서의 역할도 물론 중요하다. 무엇보다 그간 소홀히 했던 가족들과의 시간을 맘껏 즐겨볼 생각이다.” 장재선기자 jeijei@munhwa.co.kr 기사 게재 일자 2004/03/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