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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깊이읽기]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 서평 / 정창현(교양과정부 교수)
[중앙일보 2005-03-05 09:09]

[중앙일보 정창현] 북조선 사회주의체제 성립사
서동만 지음

선인, 1047쪽, 4만8000원




북한사 연구에서 자료 입수와 객관적 분석틀 마련은 다른 분야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어려운 숙제다. 북한당국의 엄격한 자료 통제, 북한이 다른 사회주의국가와 별반 다르지 않다는 선입견은 북한사 연구를 가로막는 거대한 벽이었다. 이 두 난관을 돌파하지 못하면 북한사 연구에서 독보적인 연구성과를 내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 스탈린으로부터 북한 지도자로 인정받은 김일성((中))은 1946년 8월28일 김두봉(오른쪽부터 두 번째) 등과 함께 노동당 창당을 선언했다. [중앙포토]


그런 점에서 최근 출간된 서동만 상지대 교수(전 국가정보원 기조실장)의 방대한 저작은 북한사 연구의 새로운 전형을 보여줬다고 할 수 있다. 이 책은 저자의 1995년도 일본 도쿄대 박사학위논문을 대폭 수정.보완한 것이다.


그는 북한사회주의의 성립과정을 1945년부터 1961년까지 5개 시기로 나눠, ^당.정 등 권력관계^당.군 관계^경제 부문 및 공장관리체제^농촌 및 지방통치체제 등 4개 부문에 걸쳐 통시적으로 서술, 분석했다.


그의 기본 시각은 "북한사회주의는 군사적 색채가 강한 국가사회주의"이며, 1961년에 완성되었다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초기 다양한 경력을 가진 여러 정치세력이 노동당에서 배제되고 김일성 중심의 만주파로 단일화되면서 북한체제의 역동성이 사라지고 '체제위기'가 발생했다고 분석한다. 특히 60년대 이후 다양한 변화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1961년 전후해 성립된 북한 사회주의체제의 근저에 변화가 없었고, 오히려 더 강화되는 형태로 최근까지 지속돼 왔다고 주장한다.


저자가 북한에 적용한 '국가사회주의론'이 타당한지는 학계의 논의가 더 필요하겠지만, 북한 60년사를 일관된 틀로 분석해 냈다는데 의미가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그동안의 북한사연구가 중앙의 움직임에 주목한 점에서 벗어나 북한의 지방행정, 농촌의 통치체제가 어떻게 형성되고 정착됐는가를 미시적으로 분석한 것이 돋보인다.


그러나 역시 이 책의 가장 큰 강점은 국내외 방대한 자료를 동원해 저자의 분석과 주장을 설득력 있게 뒷받침했다는 점이다. 전 시기에 걸쳐 일관해서 북한의 당 문서, 신문, 잡지 등 1차 자료를 주로 활용됐고, 새롭게 발굴된 러시아의 정보 문서가 추가됐다. 러시아.중국에서 나온 증언, 망명자들의 수기 등 남한.일본 자료, 전쟁시기 미군 노획문서 등 일일이 거론할 수 없을 정도다. 실증이 부족했던 그동안의 북한사 연구의 한계를 훌쩍 뛰어넘은 셈이다.


저자는 또 이들 자료를 일일이 대조해 초기부터 1960년대 초까지 북한 당.정.군 주요 간부의 인사 내용을 거의 파악해 정리했는데, 앞으로 북한사연구의 수준을 한단계 높일 수 있는 자료로 평가할 만하다.


정창현(국민대 교양과정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