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대학교

언론속의 국민
「역사를 바꾸는 리더십」

제임스 맥그리거 번스 지음 | 조중빈 옮김 | 지식의 날개 | 336쪽 | 1만5000원

1789년 10월 수천 명의 파리 시민들은 칼과 곡괭이를 들고 시청으로 몰려갔다. 극심한 가난에서 출발한 공포와 분노에 사로잡힌 군중은 구체제를 무너뜨렸다. 그러나 변혁의 열정에서 출발한 프랑스혁명은 지도부 내에 균열이 발생하면서 공포정치로 치달았다. 급진파 혁명가들은 동지를 배반하고 냉혹하게 죽였다. 이 ‘피의 향연’에서 국왕 루이 16세는 물론 귀족의 후예, 심지어 로베스피에르 등 혁명영웅과 농민반란군 등 수만 명이 처형됐다.

1787년 5월 신생 미국의 13개 주 대표들이 필라델피아에 모였다. 이미 몇 달 동안 편지를 통해 중요 쟁점들에 대해 토론 과정을 거친 이들은 조문을 하나씩 만들어갔다. 하지만 헌법 초안이 완성됐을 때 제퍼슨이 국민의 자유 부분이 빠져 있는 점에 이의(異議)를 제기했다. 당시 파리에 있던 제퍼슨과 헌법제정 회의를 주도했던 매디슨 사이에 장거리 서신 논쟁이 벌어졌다. 결국 2년 뒤 10개의 수정조항을 담은 권리장전이 통과됐다.

비슷한 시기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 나라에서 벌어진 대조적인 모습은 역사가 격랑을 일으키는 시기에 리더십이 얼마나 중요한 지를 말해준다.

평생을 리더십 연구에 바쳤으며 퓰리처상을 수상한 저자는 프랑스의 시련이 지도자와 추종자가 서로에게 ‘힘을 실어주는(empowering)’ 리더십을 갖지 못한 데서 비롯했다고 지적한다. 어느 사회에서나 갈등과 위기는 변혁과 창조의 원천이지만 그것을 지도자들의 명령과 조종에 의해서가 아니라 추종자들의 동의와 참여를 통해서 해결하려고 할 때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먼저 ‘거래적 리더십’과 ‘변혁적 리더십’을 구분한다. 전자는 지도자가 여러 정치 주체들의 중개인 역할을 하는 것이다. 자리와 권력을 주고 받으면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것은 정치 지도자의 기본적이고 일상적인 기능이다. 반면 후자는 지도자가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가져오는 주역이 되는 것이다. 하지만 앞서 언급한 미국 건국기의 예에서도 알 수 있듯이 ‘변혁적 리더십’은 영웅이나 위인 이론과는 달리 대중을 변화의 과정에 참여시키고 집단의 정체성과 능력을 고무하는 역할을 강조한다.

‘변혁적 리더십’에서 중요한 것은 비전을 제시하는 지도자의 능력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서는 대중이 동의할 수 있는 가치와 도덕이 뒷받침돼야 한다. 그래서 저자는 “리더십에 가치 중립은 없으며, 도덕적 필연성을 가진 것으로 평가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이 책임과 과업 완수에 대한 강한 동기, 목표를 추구하는 맹렬함과 끈질김, 모험심과 창의성 등 경영적 측면을 강조하는 다른 리더십 관련 저술들과 가장 다른 것은 바로 이 점이다. 저자는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여왕,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 레오나르드 다빈치, 간디, 수에즈운하와 파나마운하를 건설한 레셉스와 고살스, 19세기 후반 40년 동안 하바드대 총장을 맡아 대학을 근본적으로 변혁시킨 엘리엇 등을 통해 이를 확인한다.

가치에 토대를 둔 리더십의 역할은 사회가 개방적이고 다원적이 되면서 더욱 중요해진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지도자가 되려는 사람에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다수의 희망과 기대를 반영하는 가치로 사람들을 설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선민기자 smlee@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