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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포커스] 일본 안보정책의 전환 / 이원덕(일본학과) 교수

 

일본이 지켜왔던 ‘평화국가’와 ‘소극안보’ 규범은 사실상 의미를 상실하고 있다. 전후 일본은 교전권을 포기하고 군사력 보유를 금하는 평화헌법 9조를 채택했으나 자위대 창설로 이 조항은 사문화된 지 오래다. 일본에서 안보정책 변화가 본격적으로 추진된 것은 아베 정부 시기였다. 아베 정부는 안보법제를 도입해 평화헌법이 금했던 ‘집단적 자위권’을 인정하는 쪽으로 정책을 전환했다. 이어서 기시다 정부는 ‘전수방위 원칙’을 버리고 ‘반격능력’ 보유를 기정사실화했다.


다카이치 정부의 안보정책 전환은 이 연장선 위에 위치하는 것으로 그다지 새로울 것도 없다. 다만 다카이치 내각이 추진하는 안보정책의 전환은 전광석화 같은 속도전을 방불케 한다는 점에서 주목된다. 즉 최근 다카이치 사나에 총리는 비핵 3원칙, 무기수출 3원칙의 봉인을 해제하는 한편 안보정책 3문서의 조기 개정에 착수했다. 또 방위비 증액을 전격 결정했고 마침내 평화헌법에 자위대 명기의 수순을 밟기 시작했다.


지난달 21일 ‘방위장비 이전 3원칙’과 운용지침을 개정해 살상무기 수출의 빗장을 전면적으로 해제했다. 나아가 중고무기를 동남아시아에 무상 혹은 저가로 양도하는 법안과 미국과 합작으로 드론 생산도 추진 중이다. 또한 다카이치 총리는 당초 내년으로 계획했던 ‘안보 3문서’ 개정 일정을 올해로 앞당겼다. 지난달 27일 도쿄 총리관저에서 열린 문서개정을 위한 전문가 회의에서 다카이치는 “국가의 명운이 달렸다. 일각의 유예도 없다”고 강조했다. 자위대의 헌법 명기도 내년 봄까지 추진에 시동을 걸겠다고 밝혔다.


방위비 분야에서는 국내총생산(GDP) 대비 2% 목표를 앞당겨 올해 달성하겠다고 공식화했다. 오랫동안 금과옥조처럼 지켜왔던 방위비 GDP 1% 이하 원칙은 완전히 깨졌고, 머지않아 GDP 3% 이상 지출도 이뤄질 공산이 크다. ‘핵무기를 갖지도, 만들지도, 반입하지도 않는다’는 비핵 3원칙도 균열 상황이다. 연립 파트너 일본유신회는 미·일 양국이 핵무기를 공동운용하는 ‘핵 공유’에 적극적인 입장이다. 다카이치 총리 역시 핵 반입 반대 원칙에 대해서는 재검토가 필요하다고 공언하고 있다.


이제 일본은 더 이상 평화헌법에서 규정한 ‘평화주의’ ‘전수방위’ 국가가 아니다. 군사적인 의미에서 ‘보통국가’ ‘정상국가’로 탈바꿈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이러한 일본 안보정책의 근본적인 전환에는 두 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다. 첫째는 러·우전쟁, 이란전쟁 등 지정학적 리스크의 증대와 동북아 지역의 세력 균형 변화에 대한 대응이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 대만해협의 긴장 고조, 중국의 군사 대국화에 대한 일본 나름의 태세 전환이다. 둘째는 미국의 안보 분담 및 방위비 증액 압박에 대한 대응 측면이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실제로 동아시아 전략 자원을 중동으로 이전시켜 이 지역 안보 공백을 초래했고 일본의 참전을 노골적으로 종용했다. 이에 다카이치 총리는 평화헌법을 들어 참전은 피했지만 안보 역할을 약속했다.


일본의 안보정책 전환은 군사력 증강을 넘어 동북아 질서 자체를 재편하는 요소가 되고 있다. 일본의 군사 역할 증대는 한국에도 복합적인 함의를 제공한다. 잘 쓰면 약이 되고 잘못 쓰면 독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한 대응 측면에서 보면 한·미·일 공조 강화라는 긍정적 효과가 기대된다. 한국 입장에서 일본의 방위력 증강은 미국의 확장 억제를 보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 중국과 북한의 반발을 초래해 지역 긴장을 고조시키는 딜레마적 측면도 있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동북아 군비경쟁을 촉발해 역설적으로 안보 불안정이 커지는 효과가 우려된다.